38살 동네사진관에 깃든 추억
#봉담사진관 → 봉담디지털스튜디오
올해로 38살이 된 사진관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봉담사진관'이 '봉담디지털스튜디오'로 이름을 바꾼 것만 보더라도 이 변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배운 이 대표 역시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저는 디지털 시대에 일찍 눈을 뜬 편이에요. 코닥하고 거래를 하다 보니 다른 데보다 변화를 먼저 감지했죠. 봉담이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디지털카메라를 미리 사서 대응했어요."
이 대표는 현재 아들과 함께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들인 이광신 실장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사진과 관련한 디지털 기술을 많이 배워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사진관을 이어받으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원래는 전공을 살려 컴퓨터 관련 업계에 취직하려 했다고 하네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 아버지께서 사진관을 정리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나서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그때가 학교 졸업앨범 납품기간이라 바쁜 시기였거든요.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다친 아버지를 돕게 됐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죠."
결과적으론 사진 관련 기술을 배워 둔 게 선견지명이었던 셈입니다.
화성 봉담디지털스튜디오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죠. 추억이 담긴 옛 사진을 가끔 꺼내볼 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를 한참 동안 잊고 살다가도 앨범 속 때 묻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즉시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되곤 합니다. 사진의 힘이란 참 마법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을 찍는 도구는 달라졌지만,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일 겁니다. 소중한 순간을 두고두고 추억하기 위함이겠죠. 봉담디지털스튜디오의 이공섭 대표는 38년 동안 화성시 봉담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봉담이 북적거리는 도시가 되었지만, 그가 처음 사진관을 열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젖소가 자라는 시골동네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의 가장 큰 추억창고는 이 대표가 운영하는 사진관일 겁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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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관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단골손님이 많습니다. 이 대표가 사진을 찍어줬던 어린아이가 사진관 나이만큼 커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방문하는 일도 있고, 한 가족의 아버지는 이 대표가, 그의 아들은 광신씨가 사진을 찍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주인뿐만 아니라 손님도 대를 잇는 것이죠.
이 대표가 이렇게 오랜 기간 한 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죠. 다만 한가지, 지역에 대한 애착을 빼놓고는 그 이유를 전부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동네 사진관이 살아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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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일 / 선정년도
1991년 창업 / 2020년 선정